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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셋ㆍ생각

[마인드셋] 나태함에 대해서 강박스럽게 경계하는 삶의 태도에 대해서(군생활에서 깨닫은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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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가 스무 살 초반에 가는 군대를 필자는 20대 중반이 지날 쯤 입대했다. 그래서 네댓 살은 어린 선임들 밑에 납작 엎드려서 군생활을 해나가야만 했다.

 

군대는 대개 이등병ㆍ일병 때는 군기가 바짝 든 상태로 이리저리 채이는 생활을 하다가, 분기점을 돌아서 상병ㆍ병장쯤 되면 느슨해지기 마련이다. 자연스럽게 "개똥같은 군문화"가 대물림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이 "개똥 같은 군문화"는 군부대의 수만큼 참 다양하기도 하면서 일관된 구석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생활관 막내가 선임의 식판을 생활관까지 가져다주고, 설거지까지 대신 해주는 문화가 있었다는 사람도 있고, 일병까지는 차가운 물로, 상병장부터만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는 치졸한 군대를 겪은 사람도 있었다.

 

한편, 내가 있었던 군대는 생활관 막내들이 선임들의 빨래를 대신하는 문화가 이어져 오고 있었다. 선임들의 양말, 외출복, 심지어 속옷까지 전부. 선임들이 빨래에 대해서는 손 하나 까딱 안해도 되게끔 후임들이 대신해주는 걸 미덕처럼 여기는 눈치였다.

 

대한민국 군대의 개똥같은 군문화

 

"이젠 나도 받아봐야겠어"라는 보복심리

 

"내가 당한만큼 똑같이 되돌려준다"라는 일종의 보복심리가 이러한 개똥같은 군문화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원동력인 것처럼 느껴졌다. "막내 때는 내가 선임들을 위해 '봉사'했다. 그런데 이제 내가 선임이니까 나도 '봉사'를 받아야겠어"라는 심리인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필자는 군생활을 그리 어렵게 느끼지는 않았다. 25살까지 나름대로 산전수전 여러 가지 경험을 하다가 와서인지 군대 안에서의 일은 오히려 시시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게다가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가는 것만으로도 목표(만기전역)를 향해서 전진하게 되니ㅡ 군대는 속 편한 곳이구나ㅡ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리고 사실 필자의 나이가 꽤 많다는 게 어린 선임들 입장에서도 내심 부담스럽고 편치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주요 원인이었는지도.

 

여하튼, 필자도 시간이 흘러서 상병이 되었다. 제대하며 떠난 선임들의 빈공간은 새로운 후임들이 채워나갔다. 어쩔 수 없이 비위를 맞춰주던 인간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하니까 마음이 가벼워지는 건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생활관의 막내 중 한 녀석이 내가 모아놓은 빨래더미를 맨손으로 가득 안고 있는데, 문득 어떠한 생각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다.

 

미안하지만 아무데서나 깔깔이를 입고다니는 복학생들이 제일 꼴불견이라고 생각했다

 

"너를 존중하려는 게 아니야. 나를 존중하고 싶어서다."

 

내 머릿 속을 스치고 지나간 잔상은 대학 시절에 보아왔던 복학생 형들의 모습이었다. 복학생 형들이 마치 말년 병장처럼 과방에서 노란색 깔깔이를 입은 채 널브러져서 후배들에게 잔심부름을 시키는 모습들이 떠올랐다.

게으른 돼지처럼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제대만을 기다리는 말년 병장의 습관이 관성처럼 남아있는 탓이었을 것으로 보였다.

 

물론 나는 그 모습이 꼴보기 싫기도 했지만, 어딘가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개똥 같은 군문화와 ㅡ 나도 대우를 받아봐야겠어ㅡ라는 보복심리로 인해서 그들 자신이 얻은 것은 편안함 뿐 아니라, 그 편안함 뒤에 숨어있는 나태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태함이란 자신도 모르게 스며들어서 어떤 일을 하건 손발을 무겁게 하는,힘겨운 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누군가가 내 빨래를 대신 해주는 것이 진정 나를 위한 것인가. 게으른 복학생들에 대한 기억이 플래시백처럼 머릿 속을 스쳐지나가니 그런 생각이 번뜩 들었다. 내게 편안함을 주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날 망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빨래는 내가 알아서 할게"

 

빨래 더미를 빼앗긴 생활관 막내가 마치 보기드문 의인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벙쪄 있길래 나는 얼른 덧붙여 말했다.

 

"너를 존중하려는 게 아니야. 나를 존중하고 싶어서야"

 

군대문화에 지지않는 직장문화도 많다

 

사실이었다.

 

개똥같은 군대 문화의 대물림을 내가 끝내보겠다,라는 깊은 생각도 아니었고,

우리 막내도 이래저래 피곤할텐데, 좀 쉬게 배려해 줘야겠다,라는 인간적인 마음도 아니었다.

단지 나 자신을 생각해서였다.

 

내 자신에게 편안함을 쉽게 허락하면. 그 다음은? 그 다음은 무엇이 있을까. 자신만 힘들어질 뿐이다.

 

손흥민을 지금의 세계적인 축구선수로 키워낸 전설적인 아버지, 손웅정도 그런 말을 했다. 성공은 선불이라고. 아마도 지금 열심히 땀 흘리며 노력해야 성공이라는 대가를 얻어낼 수 있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너무 강박적인 생각일까 싶다가도. 내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근성있게 뭔가를 꾸준히 해나가고 있는 것 같을 때는 그때 그 생각이 나곤 한다. "내 빨래는 당연히 내가 해야지"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고집 덕분에 내 일을 열심히 꾸준히 할 수 있고, 또 그 덕분에 좀 더 좋은 결과가 기대되는 것.

 

사실 나도 같은 마음이다.

언젠가는 나도 말년 병장처럼 손하나 까딱 안할 수 있기를.

내 삶이 어느 누구보다 편안해지기를 바란다.

풍요가 넘치기를.

 

하지만 지금은 취해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스스로 빨래를 돌려야할 때인 것.

 

 

PS : 개똥같은 군대 문화가 직장에서는 좀 없어지면 좋긴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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